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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재명 대표의 상속세 개편안, 진실성 의심받는 이유

━ 공제 상향 추진하면서 최고세율 인하엔 “초부자 감세” ━ 전 국민 25만원 재추진 등 갈팡질팡 행보로 불신 자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며 상속세 개편안을 꺼내들었다. 현행 일괄공제 5억원을 8억원으로, 배우자 공제 5억원을 10억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안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최대 18억원까지 세금 부담을 덜게 된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이 12억7000여만원이어서 아파트 한 채만 물려줘도 상당수가 상속세 대상이 된다.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과표 구간별 금액과 일괄공제 금액이 25년간 그대로인 만큼 개편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국민의힘과 정부가 추진하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선 ‘소수 초부자를 위한 특권 감세’라고 몰아세웠다.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과세표준 30억원 초과일 때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지분 상속을 할 때 20% 할증까지 더해져 세율이 최대 60%까지 높아진다. 높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이 대표가 상속세 개편을 꺼낸 것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시 치러질 조기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상속세와 관련해선 최고세율과 공제한도 외에도 부과 방식 등 다양한 쟁점이 얽혀 있다. 그런데도 공제한도 상한만 콕 집어 제안한 것은 대선용 포퓰리즘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소수의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원대 자산가만 이익’이라거나 ‘소수 초부자를 위한 특권 감세’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면서 최고세율 개편에 반대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갈라치기에 해당한다. 진정성이 있다면 이 대표는 표만 얻으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정부·여당과 함께 전체 세제 개편의 큰 틀에서 상속세 개편에 접근하기 바란다. 지난해 세수가 예산 대비 30조8000억원이나 줄었다. 2년 연속으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날 정도로 재정 여건이 좋지 않다. 이런 마당에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감세에만 골몰하는 건 정치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상속세의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하고 상속자산 전체가 아니라 실제 상속받은 유산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 도입 등도 정부·여당과 논의하기 바란다. 정책 노선 변경을 두고 ‘우클릭’ 논란이 나오자 정작 이 대표는 “우클릭을 안 했다. 원래 제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신속한 추경 편성을 위해 포기할 수 있다고 했던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이 민주당 추경안에 다시 포함됐다. 진실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이런 행태부터 없어야 한다.

2025-02-16

[사설] 북 비핵화 재확인 의미 있지만 ‘트럼프 변수’는 대비해야

━ 뮌헨서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 연쇄회담 성사 ━ 한국 ‘패싱’ 북·미 직접대화 가능성 등 배제 못 해 독일에서 열린 연례 국제안보포럼인 뮌헨안보회의(14~16일)를 계기로 한·미 외교장관 회담,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가 연쇄적으로 성사됐다. 양자회의와 다자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상당한 성과다. 한·미·일은 강력한 안보 협력에도 합의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한국 측이 크게 우려했던 민감한 외교·안보 이슈에서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취임 이후 생생하게 보여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 행보를 고려하면 언제 어떤 돌출 카드로 동맹을 압박하고 당혹스럽게 할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2017년과 2025년 모두 한국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당했는데, 그나마 트럼프 1기 때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10일 만에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총리)이 통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취임 한 달이 다 되도록 통화가 성사되지 않아 한국이 워싱턴의 관심 후순위로 밀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부총리)과 한·미 동맹의 강인함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면서 조만간 직접 통화 기대감을 키웠다. 한국의 유일한 동맹인 미국 정부의 구두 약속이나 공약·합의를 불신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2기의 대외 정책은 변수와 유동성이 큰 만큼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은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때마침 미국이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 대가로 우크라이나 보유 희토류의 절반을 요구하고 있다는 외신이 나왔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동 가자지구를 점령해 해양 휴양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아 관련국 반발을 사기도 했다. 횡포에 가까운 미국 우선주의 행태인데, 동맹이라고 예외가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짙다. 예컨대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면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건너뛰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코리아 패싱’이 실제 벌어져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군축 협상으로 직행할 우려도 배제하기 힘들다. 실제로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원산 갈마지구를 세계적 관광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스톰’에 휩쓸려 낭패당하지 않으려면 미국 조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백악관 동향을 정교하게 점검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미 관계의 경로 의존적 사고 틀에 안주하지 말고 때로 역발상의 상상력을 발휘해 트럼프 특유의 변칙 스타일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2025-02-16

[장훈 칼럼] 정당이 납치된 시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트럼프 취임 이후 세계는 변칙과 소란, 불협화음으로 가득하다. 우리 정치에도 트럼프 파동이 밀려오는 가운데 주목할 것은 정당의 납치(hijacking of party) 현상이다. 외관상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간판을 달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실제로 공화당은 트럼프가 이끄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에 납치된 상태이다. 시장주의와 엄정한 법치를 내세우던 공화당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대신 미국 우월주의, 법치에 대한 조롱, 폭력의 용인 등이 기괴하게 결합한 MAGA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2021년 의사당 폭동 사건 가담자 1500여 명을 사면했다. 경악스러운 일이었지만 공화당 내부에서 조직적 저항은 없었다. 트럼프 현상, 공화당을 실질 장악 외곽의 극단 세력이 정당을 접수 우리의 여야 정당도 극단이 좌우 리더의 역할은 극단 세력의 제어 극단 포퓰리즘이 정당을 납치하는 현상은 우리 땅에도 이미 상륙하였다. 이재명 대표를 열성적으로는 따르는 극렬 지지자들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적 절차와 과정을 압도했다. 이 대표에게 거슬리는 비명계 예비후보들은 좌표 찍기를 거쳐 문자 폭탄 세례를 각오해야 했다. 때론 급작스러운 경선 규칙 변경과 예선 탈락을 감수하기도 했다. 반면에 몇몇 친명 후보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극단적 발언을 하더라도 든든한 지원군의 엄호를 받았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정당 납치의 길에 들어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의결 이후의 혼란 속에서 보수 외곽의 극우 세력은 빠르게 여당을 장악해가고 있다. 당의 중진들이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서 큰절을 올릴 때만 해도 일회성 사건인가 싶었다. 하지만 극단 분파들이 국민의힘 주선으로 국회에서 버젓이 기자회견을 갖는가 하면 여당 비대위원장은 극우 유튜버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냈다. 탄핵 심판을 받는 중인 윤 대통령도 부정 선거론자, 극우 세력에게 노골적으로 기대는 태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화 38년 만에 보수 정당은 극우 세력에게 포획당한 상태다. 극단 세력이 기성정당들을 납치하는 현상은 한국,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을 휩쓰는 글로벌 정치의 팬데믹이다. 과연 우리는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동안 제시된 정당 개혁론을 여기서 되풀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필자는 12·3 위기 이후 요동치는 세 정치 부족 사이 힘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 기성정당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각 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극단주의 훌리건족(族)이 있다. 둘째, 12·3 헌정 위기 이후 정치사회적 불안이 확산하자 대세를 추종하는 대중들(호빗족)은 점점 여야의 훌리건들에게 각각 빨려 들어가고 있다. 셋째, 가짜뉴스·선동·폭력이 난무하는 혼란 속에서 여전히 합리성을 지키려 애쓰는 합리적 시민들, 벌컨족은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다. (벌컨은 미국의 초장수 인기 드라마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미래 휴머노이드인데, 특히 감정을 억제하고 오직 이성과 논리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유명하다. 훌리건, 호빗, 벌컨의 비유는 정치철학자 브레넌의 논의에서 빌려왔다.) 결국 요점은 훌리건이 주도하는 호빗-훌리건의 이인삼각을 해체하고 어떻게 하면 벌컨의 입지를 키우는가에 달려 있다. 먼저 훌리건부터 살펴보자. 경기장에 난입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광적인 스포츠 팬들을 훌리건이라고 불러왔는데, 지난 1월 19일은 극우파 훌리건의 밤이었다.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극렬 지지자 100여 명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해 기물을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훌리건의 밤은 단 하루였지만 파장은 깊고도 길다. 위험천만한 당파적 폭력의 위세 앞에서 여의도 정치 귀족들뿐만 아니라 대중들마저 이들에게 의탁하려는 몸짓을 보인다. 예를 들면 한국판 MAGA 집회는 서울, 대구, 광주에서 계속 세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하락 추세이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1월 하순부터 회복되어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보수의 결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전위적 훌리건들이 이끄는 당파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대중들 일부가 뛰어드는 흐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나마 희망을 기댈 곳은 우리 안의 벌컨족 뿐이다. 폭주하는 민주당도, 비겁한 국민의힘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 안에 벌컨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누구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강하다. 소모적이며 파괴적인 당파 전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이들이 바로 합리적 중도로서의 벌컨 족이다. 문제는 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믿는 타협으로서의 민주주의, 극단주의와 폭력의 배제라는 가치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근간이지만, 이런 믿음을 진실되게 대변하는 리더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벌컨의 믿음은 정치 리더의 언어를 통해 표현될 때에 현실의 힘이 된다. 훌리건의 유혹을 뿌리치고, 벌컨들의 민주적 신념을 끌어안을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2025-02-16

[정철근의 시시각각] AI시대 역행하는 한국의 수학 교육

KAIST 김정호 교수는 엔비디아 AI반도체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SK하이닉스는 김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HBM 개발에 성공했고, AI 혁명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하지만 국보급 과학자인 김 교수는 어린 학생들에겐 ‘듣보잡’에 가깝다. 네이버를 치면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국회의원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른 가수 김정호, 야구선수 김정호는 나오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AI 반도체 과학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고교수학서 행렬·벡터 삭제는 실책 중국, 수학영재가 AI 연구개발 선도 과학계가 교육과정 개편 주도해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초등학교 고학년을 상대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은 연예인, 운동선수를 꼽았는데 과학자(4.95%)를 선택한 학생이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6.76%)보다 적었다. 어린 학생들 눈엔 어렵고 힘들기만 한 과학자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기 셰프가 롤 모델인 것이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학문은 수학이다. 그런데 한국은 2018년 고교 입학생부터 수학 교육에서 행렬·벡터를 뺐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설계하는 데 행렬·벡터 이론은 핵심 도구로 쓰인다. 수학이 AI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미국, 영국, 싱가포르는 고등학교에서 행렬을 가르친다. 한국에서 수학은 대학입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과목이다. 학생들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고, 우수 학생의 공대 기피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올해 고교 입학생부터 행렬과 벡터가 다시 도입됐다. 하지만 수학 실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한국 입시제도는 너무 자주 바뀌어 빈틈 투성이다. 문·이과 교차지원 제도를 잘 이용하면 행렬·벡터를 피하면서 난도 낮은 과목을 조합해 공대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딥시크 돌풍으로 국가 영웅이 된 량원펑은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5선 도시’ 출신이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17세에 저장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량원펑은 학생 때부터 수학, 특히 선형대수(행렬·벡터)를 좋아했다. 그가 2013년 창업한 투자회사 이름을 선형대수의 대가인 독일 수학자 야코비에서 따왔을 정도다. 중국의 AI 굴기는 무섭다. 전 세계 대학·연구기관의 AI 연구논문 순위 10위권에 량원펑의 모교인 중국 저장대가 당당히 올라 있다. 미국 하버드대, 카네기멜런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앞서는 수준이다. IT의 강자 인도공과대학(IIT)도 AI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IIT 구와하티 캠퍼스는 2023년 온라인 교육플랫폼 코세라와 손잡고 전 세계 인재들을 상대로 AI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가르치고 있다. 매 학기 수천 명의 지원자가 이 대학의 앞서가는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위해 선형대수·통계·미적분 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이렇게 세계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 한국 대학은 퇴보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대학평가기관 QS 2024 세계대학 순위에서 수학 분야 10위권은 MIT, 스탠퍼드 등 미국 대학과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등 영국 대학이 휩쓸고 있다. 한국 대학은 서울대, KAIST를 빼곤 대부분 100위권 밖이다. 한국 고교교육은 온통 수능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AI가 주도하는 미래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 학생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범위(행렬·벡터)를 줄이면서 정작 수능 문제는 현직 수학과 교수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비비 꼬아 출제한다. 올해 ‘의대 쏠림’ 사태는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형적 현상은 머지않아 한국 경쟁력을 붕괴시키는 재앙으로 닥칠지 모른다. 이제 수학·과학 교육과정 개편은 교육부가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 특히 교육부는 대학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나눠주면서 대학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관료주의를 깨버리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것이다. 정철근(jcomm@joongang.co.kr)

2025-02-16

[하현옥의 시선] 선거가 부르는 무리수 정책

선거는 무리수를 부른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의 난무는 차라리 낫다. 어차피 실현 가능성이 없는 만큼 그냥 넘기면 된다. 문제는 꼭 필요한 정책이 선거의 광풍에 휩쓸릴 때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의견 수렴, 정책 효과 및 해당 정책으로 야기될 부작용과 후폭풍에 대한 분석, 그에 대한 설득 작업 등을 망라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함에도 정책의 ‘당위성’에 매달려 마구잡이식으로 추진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배가 산으로 가다 못해 좌초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의료개혁이다. 명분으로 내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는 필요한 일이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명제였다. 하지만 과정은 거칠었고, 결과는 파국이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정교한 정책 접근은 부족했다.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다며 무리한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에는 강경 일변도로 응수했다. 결국 의료 대란으로 이어지며 의료 체계는 약화했다. 국민의 건강권은 위협받고 있고, 의대 교육의 부실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상황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의료 개혁을 위한 계획과 정책 미비와 정치적 역량 부재, 의사의 반발 등이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간 이유지만 이 사태의 근저에는 총선을 겨냥해 2000명 의대 증원을 막무가내식으로 추진한 과욕과 무리수가 있다. 의사 기득권에 대한 반감과 의대 증원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 기댄 채 졸속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의료개혁은 좌초될 위기다. ‘조기 대선’ 행보를 펼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언급한 ‘주 4일제’도 ‘선거용 무리수’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을 듯하다. 이 대표는 “창의와 자율의 첨단 기술 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는 상황 속 생산성 향상과 함께 근로시간 감축 등에 대한 논의는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과제다. 졸속 의료개혁 추진은 좌초 위기 이재명 대표의 ‘주 4일제’도 논란 정책 파급효과와 부작용 따져야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이 대표의 ‘주 4일제’ 주장에 노조마저도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노총이 이날 논평에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주 52시간제 예외적용에 대한 전향적 수용을 검토하던 이 대표가 갑자기 주 4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가 표를 얻기 위한 양동작전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을 정도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단 환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로 시간 감축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근로 시간 감축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복잡한 정책이다. 소비와 생활 패턴 등의 변화를 야기하는 등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하다. 주 5일제가 정착될 때까지도 지난한 논의와 합의, 단계별 시행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주 4일제와 관련해 당장 첨예하게 맞설 지점은 근로 시간 감소에 따른 임금 감소 여부다. 노조 등은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한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경영계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이다. 주4일 근무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 우려도 제기된다. 유연한 근로 시간제를 가진 경쟁국에 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줄어든 근로 시간만큼 수입 감소를 근로자가 받아들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 없는 근로 시간 감축은 임금을 끌어올리고 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일당제나 시간당 근무를 하는 이들의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소득을 채우려 ‘n잡러’가 늘어날 수 있다. ‘주 4일제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주 4일제를 일괄 적용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곳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도 “이 대표가 주 4일제를 말한 건 4일만 일하고도 잘 살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조의 말을 그대로 들어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공서나 공공기관, 학교 등의 주 4일제가 국민의 일상에 미칠 영향도 검토해야 한다. 근로 시간 감축은 그 파급 효과와 부작용을 정교하게 따져 추진해야 한다. 표를 얻겠다고 졸속으로 밀어붙인다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주 52시간제가 누군가에게는 ‘저녁밥은 없는 삶’이 됐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하현옥(hyunock@joongang.co.kr)

2025-02-16

[리셋 코리아] 차기 헌법엔 개헌 절차 연성화 포함돼야

1987년 10월 제9차 개정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2025년 2월 현재 37살이 넘었다. 역대 헌법들의 수명이 평균 5살이 안 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장수헌법이다. 문제는 헌법이 장수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헌법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대적 변화를 담지 못하는 낡은 헌법도 문제다. 현행 헌법이 근 40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것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법체계를 가진 독일의 경우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는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벌써 70회 가까이 헌법 개정을 경험했다. 전후 독일은 70회 가까이나 개헌 37살 헌법 새롭게 고치지 못하면 갈등 지속하고 국가 경쟁력 약화 학계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요구된 것은 벌써 20년이 넘었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안, 201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안 등 개헌을 위한 노력도 있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주목할 점은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이 부인된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대통령 임기 말 개헌이 부적절해서, 여러 가지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서, 또는 개헌의 내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서, 여야 정치권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개헌이 실패했다. 그런데 개헌이 늦어질수록 대한민국의 내부적 갈등과 대립은 커지고, 국가 경쟁력은 약화한다. 만일 1987년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 개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당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던 개헌이 갈등과 혼란을 막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통한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2025년 대한민국의 상황은 1987년 못지않은 갈등과 혼란을 보이고 있으며, 30년 이상 지속한 갈등과 혼란을 정치 지도자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승자독식이라는 국가체제의 문제점, 이를 현명하게 해소하지 못하는 정치문화의 문제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합리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둡다. 그런데도 정치세력들은 집권을 위한 권력투쟁에만 골몰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계속 약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같은 정치 상황이라면 정치인들에게 오로지 국민만 보라고, 집권을 위해 노력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오히려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집권이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야의 집권 투쟁이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이 아닌 생산적 경쟁이 되도록, 국민을 위해 더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경쟁이 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개헌이다. 다만, 과거의 개헌 시도가 실패한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는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모두 수렴하겠다고 욕심부리고, 대선 블랙홀을 경시했다가 실패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시절엔 야당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인 개헌안을 발의했다가 야당이 거부하자 이후 개헌논의 자체를 접어버렸다.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 없었다고 평가되는 이유이다. 이미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작지 않다. 다만, 개헌의 시급성과 절박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헌 없이는 작금의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치 시스템을 포함한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개헌의 성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점들이 먼저 개정되어야 한다. 즉,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국회, 사법부 코드인사 등의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 둘째,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먼저 개정하고, 합의가 어려운 것은 차기 개헌의 과제로 남겨두어야 한다. 셋째, 다음의 개헌을 다시 30년 이상 기다리지 않도록 헌법 개정의 절차를 연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성공적인 개헌은 국가발전의 기초이며,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제10차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새로이 도약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개헌분과 위원

2025-02-16

일본 IT기업이 AI 인재 키우는 대학 신설... [오누키 도모코의 일본 외전]

만화 ‘슬램덩크’의 성지인 일본 가나가와현 쇼난(湘南) 해안. 이곳에서 5km 떨어진 바닷가에 오는 4월 새로운 온라인 대학이 들어선다. 이 대학 학생들은 평소 집이나 카페에서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게 된다. 얼핏 보기엔 여느 통신제 대학 같지만, 이 곳은 IT기업이 AI인재를 키우는 온라인 대학이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움터이기도 하다. 대학 이름은 ‘ZEN 대학’.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공익재단법인 ‘일본재단’과 IT 대기업 ‘도완고(dwango)’가 함께 설립했다. ‘일본재단 도완고 학원’에 따르면, ‘ZEN(젠)’은 일본어 발음의 全(전체), 然(자연), 善(선) 등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캠퍼스는 연구실 용도로만 사용하게 된다. 강의 대부분은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제공한다. 한 강의는 10분짜리 영상 6개로 구성되며, 15번의 강의를 수강한 후 시험에 합격하면 학점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 강사진은 AI연구 1인자,유명 디자이너 주목할 점은 총 6480개의 다양한 영상 콘텐트와 일본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진이다. 학부는 ‘지능 정보 사회학부’ 단 하나. 여기에 ^디지털 산업 ^경제·시장 등 6개 분야, 총 279개의 과목이 개설돼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콘텐트 중 졸업에 필요한 61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강사진으로는 일본 AI 연구의 1인자로, 정부 ‘AI 전략회의’ 좌장을 맡고 있는 마쓰오 유타카(松尾豊) 도쿄대 교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모치즈키 케이(望月けい), 북디자이너 아리마 도모유키(有馬トモユキ) 등이 포진하고 있다. 대학측은 “급변하는 AI 시대에 맞춰 활약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ZEN대의 캐치프레이즈는 “최첨단 교육을 모두에게”다. 연간 수업료를 38만 엔(약 360만원), 입학금은 3만 6,000엔(약 34만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국립대학의 연간 수업료 54만 엔(약 510만원), 입학금 28만 엔(약 260만원)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사립대학의 평균 수업료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일본재단의 지원도 있었지만, 온라인 대학이기에 가능했다. ‘인터넷과 현실의 융합학습’도 중시하고 있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지자체와 지역활성화 및 인재 양성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는가 하면 지역 주민들과 해변 청소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대학측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지역 주민과 교류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계열고 ‘등교거부 학생 위한 학교’에서 도쿄대 합격자도 배출 한 학년 정원은 3500명으로, 일본의 사립 온라인 대학 중 최대 규모다. 지난해 11월부터 입학 원서접수가 시작됐는데, 1월말 현재 이미 30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다. 입학 전형은 지원 동기 및 400자 이내의 소논문 심사로 이루어진다. 대학측은 “배움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수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ZEN대 개설은 10여 년간 운영해 온 온라인 고등학교가 밑거름이 됐다. 도완고는 모회사인 대형 출판그룹 ‘KADOKAWA’와 함께 2016년 ‘N고등학교’, 2021년에 ‘S고등학교’를 세웠다. 오는 4월에는 ‘R고등학교’도 개교를 앞두고 있다. 온라인 고등학교는 과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대안 학교였다. 부등교(不登校, 등교거부)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학생들의 부등교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2023년에는 일본 초·중학교 부등교 학생수가 34만 명에 달했다. 자연스레 온라인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코로나로 온라인 교육이 일반화하면서 일본의 온라인 고교 학생수는 2018년 19만 명에서 2024년 29만 명으로 급증했다. 20년 이상 통신제 교육에 종사해 온 N고의 오쿠히라 히로카즈(奥平博一) 교장은 “온라인 고등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며 도완고에 협력을 요청했다. 도완고가 운영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니코니코 동영상’을 교육에 활용하기로 했다. ‘N’에는 NEW, NET, NEUTRAL, NECESSARY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N’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또한, 프로그래밍과 웹디자인 등 기존 고등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약 1만 개의 콘텐트를 갖췄다. 이 학교의 특징인 ‘온라인 부카쓰(동아리)’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기존 고등학교에는 없던 ‘투자부’ ‘창업부’ 등이 있고, ‘정치부’에선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부총리가 특별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의 이미지 및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대학 입시 대비에도 힘썼다. 그 결과 개교 4년 만인 2020년 도쿄대 합격자를 배출했고, 2024년에는 해외 대학 합격자 수가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이런 차별화된 교육 방식이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일반 학생들 지원자도 매년 늘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도 불구하고 N고와 S고의 학생 수는 총 3만 명에 달하며, 일본 최대 규모의 고등학교로 성장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친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온라인 교육에 익숙하며, 자기 주도형 학습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N고나 S고를 선택하는 추세다. 그러면서 이들 졸업생들을 위해 ZEN대가 세워졌다. 현재 지원자의 47%가 N고와 S고 출신이다. ━ “온라인 교육으로도 사회진출 가능" ━ 과제는 배움의 질을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10월 ZEN대 설립을 인가하면서 교육의 질 보장과 학생 지원 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8일 온라인 설명회에선 출석 관리를 비롯해 ‘담임’역할을 하거나 취업지원을 하는 등 세 가지 어드바이저 시스템을 자세히 소개했다. 도완고 창업자인 가와카미 노부오(川上量生) 전 대표는 ”단순한 온라인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을 갖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세대는 온라인에서 만나 친분을 나누고, 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N고 학생들의 국어 모의고사 성적은 전국 평균을 뛰어넘는다. 온라인에서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N고 성공사례가 ZEN대에서도 통할지 주목된다. 오누키 도모코(onuki.tomoko@joongang.co.kr)

2025-02-16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DNA 신비 밝히고도 무시당한 여성 과학자

요즘 DNA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본질이 어떠하다고 말할 때 그런 DNA가 있다고들 멋 부리며 얘기한다. 그런데 DNA란 무엇인가? 그냥 유전자라고 하면 뜻이 더 잘 통할 것 같은데, 꼭 영어로 쓰고자 한다면 정확히 알고 쓰자. DNA는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이다. 세포의 핵에 포함된 산성 물질이라는 뜻에서 핵산(Nucleic acid)이라 하는데, 그 분자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 중 디옥시리보스(deoxyribose)라는 것이 있으므로 그것이 이름에 들어간다. 유전자 기록하는 DNA 발견 여성 과학자 프랭클린의 업적 남성 위주 과학계가 무시해 과학적 발견은 다수의 협업 일반인들은 DNA의 정확한 화학적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종 생물의 본성을 규정하는 유전자 정보가 그 DNA 분자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정보는 대를 물려 전달된다는 것이다. DNA가 그렇게 정보를 담고 또 복제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이중나선’(double helix)형의 구조 덕분이다. 아주 기다란 사다리같이 생긴 것이 꽈배기처럼 틀어져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사다리의 계단 하나하나마다 한 글자의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인데, 그 글자에 해당하는 것은 G·A·C·T로 표기하는 네 가지 염기(base)이며, G는 C와, 또 A는 T와 서로 상보적 관계로 결합하여 있다. 그러니까 사다리 계단마다 태극기 가운데에 음양이 물려 있듯이 두 염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담긴 정보를 표현해야 할 때는 이중으로 된 DNA 분자가 양쪽으로 갈라진다. 그러면 한쪽에 나열된 염기들의 순서를 읽는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아니면 양쪽에 각각 새로운 상보적 염기와 사다리 줄기를 붙여줌으로써 DNA 분자를 복제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 그리고 프랭클린 참으로 신기한 이치인데, 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과학자들이 어떻게 밝혀냈는 지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면 꼭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이다. 필자가 교편을 잡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했던 이 사람들은 1953년도에 DNA구조를 알아차린 후 항상 퇴근길에 즐겨 찾던 이글이라는 선술집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것을 선언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이 술집 외벽에는 그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명판이 붙어있다. 관광객들이 아주 즐겨 찾는 기념사진 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왓슨은 나중에 『이중나선』이라는 자서전적 대중서를 발간하여 어려웠던 발견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전해주었고, 이것은 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필자도 중학교 때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던 이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 책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큰 업적을 마치 자기들 두 사람만의 영리함으로 이루어 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런던대학에서 활동했던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공헌을 축소하여 이야기 한 것이 큰 잘못으로 지적되고 있다. DNA 분자 구조를 밝혀내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엑스레이를 사용한 사진이었다. 보이지 않는 분자의 모양을 보통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지만, 결정을 형성한 후에 아주 파장이 짧은 엑스레이를 통과시키면 광선이 회절 되는 모양을 보고 분자 구조가 어떤 것인지를 추정할 수 있다. 프랭클린은 그러한 관측을 하는 솜씨가 탁월했고, 거기에 기반해서 DNA 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생각을 기록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왓슨과 크릭이 같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먼저 선언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프랭클린의 허락도 없이 그녀가 얻어낸 실험 결과를 몰래 보고 추론하였는데, 거기에 대한 감사의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남성 위주의 과학계에서 고달프게 선구적 연구 활동을 했던 프랭클린은 상당히 섭섭했을 것이다. 노벨상도 비껴간 여성 과학자 프랭클린은 DNA 외에도 바이러스의 구조를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1958년에 40세도 못되어 난소암으로 사망하였다. 왓슨과 크릭, 또 런던대학에서 프랭클린과 같이 활동했던 윌킨스는 DNA 구조를 밝힌 업적으로 1962년도 노벨상을 받았으나, 사망한 사람은 수상하지 못하는 노벨상 규정 때문에 프랭클린은 후보로 오르지도 못하였다. 그의 공헌이 과학계에서 아주 무시되지는 않았으나 DNA 하면 우선 왓슨과 크릭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왓슨은 1968년도에 출간한 『이중나선』 책에서 프랭클린을 무례하고 비협조적인 사람으로 묘사하였으며, 화장이라도 제대로 하고 다녔으면 좀 나았을 것이라는 등 고인에 대한 모욕까지 일삼았다. 이런 식의 회고록에 대하여 크릭과 윌킨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왓슨은 또 말년에 인종주의적인 발언도 삼가하지 않아 존경받아야 마땅한 거장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이렇게 왓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왓슨과 크릭을 기리는 명판에 사람들이 매직펜으로 프랭클린의 이름을 추가하는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지우면 또 누군가가 다시 써놓고 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관계자들은 잘못된 사실을 인정하고 프랭클린과 윌킨스도 인정하는 문구로 새 명판을 설치하였으며,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DNA 구조의 발견에 기여하였다는 말도 넣었다. 철거된 옛 명판은 프랭클린의 이름을 낙서로 간직한 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과학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것도 중요한 역사의 유물이니까.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2025-02-16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통상임금 범위 확대 충격…임금체계 개편 계기로 삼아야

혼란 계속되는 통상임금 산정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우리나라 기업의 인사노무관리와 노동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판결을 했다.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의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새로운 통상임금의 기준을 제시하며 피고가 승소한 1·2심을 파기 환송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통상임금 인정 기준을 변경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혔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다. 그런데 각급 법원이 노동 현장에서 많이 활용하는 시행령을 해석하는 ‘고용노동부 행정지침’보다 사안에 따라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왔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노사 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 통상임금은 경영상의 난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여 년 전 미국을 방문해 GM에 한국 투자 확대를 요청했을 때, GM 회장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을 정도였다. 통상임금 판단 혼란에 소송 남발 기준 넓힌 대법원 판결 여파 거세 인건비 추가 부담 연간 7조 추정 노조의 소급분 소송 이어질 전망 복잡한 임금체계가 논란 불러와 임금 구성 단순화 등 개편 필요 달라져 온 법원의 통상임금 판단 기준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한 기존의 사법부 기조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2013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1개월 단위를 넘어 고정적으로 지급했던 정기 상여금을 포함하며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명확히 인정하고 그 외에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으로 소정 근로(근로자와 사용자가 사전에 합의·계약한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 것”을 제시했다. 또한 “정기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에 기초한 추가임금의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될 수 있다”며 소급청구에 대해 일정 부분 제한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나 분규가 상당 부분 정리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경영계는 기업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반면 노동계는 ‘3년까지 인정되는 임금 채권의 소급 청구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다면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신의칙에 대해 “재계 입장을 반영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법 적용과 판단을 둘러싼 혼란도 이어졌다. 과거 3년의 임금 채권 소멸 여부를 판단하는 신의칙의 적용과 관련해 노사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매우 추상적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법원마다 달랐다. 기아차와 금호타이어 등 여러 기업은 1심에서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지연이자까지 부담하며 상급법원에서 다툼을 이어갔다. ‘고정성’과 관련해서도 여러 소송에서 법원마다 판단이 달랐고, 2024년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서 결과적으로 확인했듯 법원의 판단 기준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근로자나 노동조합도 1·2심의 패소에도 통상임금 소송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통상임금 범위를 넓힌 2024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정기성, 일률성 그리고 고정성 3가지 원칙 중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해야 한다는 ‘정기성’과 일정 기준을 충족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일률성’의 원칙은 유지했다. 하지만 특정 시점에 재직해야 하거나 일정 근무 일수를 충족해야 하는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고정성’의 원칙을 폐기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하며 소정 근로일수 이내의 근무 일수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며 “회사가 재직 조건 등 지급 조건을 부가해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 개념의 강제적 적용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게 된다”는 것을 판례 변경의 이유로 밝혔다. 통상임금의 요건에서 고정성을 폐기하기로 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하급 법원에서 고정성과 관련해 대법원에 대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3년 판결이 잘못됐음을 10년이 지나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 판결, 2013년 판결 잘못 인정한 셈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한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은 거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조건부 상여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휴일·연장·야간근로 수당 등이 인상돼 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연 7조원 정도로 추정했다. 대법원이 이번 판례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과거의 소송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지만 대법원 선고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된다고 밝히며, 오랜 기간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통상임금 소송이 원고 측에 유리하게 파기 환송되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한 달 정도 흐른 지난달 22일 기준, 소송 제기 10년여 만에 재직자 요건의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된 ‘세아베스틸’ 사건 등 6건의 상고심이 영향을 받았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소급분을 돌려달라는 소송 제기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 집행부가 향후 제기할 통상임금 소송에 약 2만명의 조합원이 위임인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인 현대차를 비롯, 많은 대기업 노조도 기아차 노조처럼 대법원 판례 변경에 따라 통상임금 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는 “전원합의체 판결 강행 규정을 근거로 기존 통상임금 미반영 항목을 포함해 2019년 노사 합의 당시 미흡했던 부분까지 검토해 권리를 쟁취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법리에 집중해 노동시장 고려 미흡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포함해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원 판결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쉬움이 크다.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리적 해석에 집중해, 법원 판결의 변경에 따른 노동시장의 혼란에 대한 고려가 미흡해서다. 사실 통상임금을 정하는 데 있어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고정성’ 개념을 도입한 것이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1996년 2월 9일 선고한 ‘94다19501’ 판결에서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그것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에 속해야 하므로”라고 했으나 고정성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관련 소송이 크게 증가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 휴가비 등 소액 수당에 한정해 제기됐던 통상임금 소송은 2012년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며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급심 법원은 정기성과 일률성이 인정되면 바로 고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수십년간 현장에서 활용했던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은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적 금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2019년 시영운수 소송에서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례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통상임금 기준을 가지고 합의한 임금 교섭의 결과가 흔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번 판례 변경의 효력을 현재 진행 중인 소송뿐만 아니라 판결 이전에 이미 지급된 임금에 대해서도 적용하지 않는 결단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도 대형 사업장의 임금 교섭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임금은 노사 단체 교섭으로 상당 부분 결정된다. 그런 만큼 단체교섭 기준이 되는 대법원 판례가 바뀌면 교섭의 전제 조건이 바뀌는 것이다. 대법원이 2013년 판결에서 신의칙을 도입한 것이나, 2024년 판결에서 종료된 관련 소송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다. 임금 산정에 혼란 겪는 기업과 근로자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충격에도 이번 판결을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통상임금의 적용과 관련된 논란은 우리나라 임금이 너무 많은 수당 등으로 구성된 데서 연유한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통상임금의 개념을 정립하고자 한 것은 관련 입법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이 적용되는 임금의 종류도 통상임금과 평균임금, 최저임금 등 여러 가지다. 소송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많은 기업과 많은 근로자가 통상임금, 평균임금,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통상임금의 계산 기초로 사용하는 근로조건이 시간 단위로 산정돼 통상임금을 시간급으로 산정하는데,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아도 사업장 근무형태나 유급휴무 여부 등에 따라 통상임금이 달라진다. 그런 만큼 임금 구성이 단순해져야 한다. 역량이나 성과에 기준한 임금 체계로의 개편도 필요하다. 호봉제에 기준한 연공급 임금체계로 인해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많은 고령 근로자가 정년 전에 주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고령 근로자가 주된 일터에서 오래 머물 수 있으려면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개혁과 연관돼 논의되고 있는 법정정년의 연장도 임금체계 개편이 수반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2025-02-16

[원옥금의 한국에 산다는 것] 이 땅의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

‘어린이를 부탁해….’ 방정환 선생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마지막 말이다. 방정환 선생은 1922년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날과 어린이인권선언을 만들었다. 모든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고, 어린이를 업신여겨서는 조선의 미래가 없다고 했다. 우리의 뜨거운 정성으로 생겨난 ‘어린이’가 따뜻한 가슴에 안길 때 깨끗한 영의 싹이 돋을 것을 믿는다고 했다. 방정환 선생이 바라던 어린이 세상은 100년 후인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어린이들이 풍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면 늘 일을 하며 보내야 했던 내 모습과 비교하며 장차 나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이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 행복을 느꼈다. 부모 따라 ‘불법’된 미등록 아동 수학여행, 병원 치료에서 소외 3월 끝나는 지원책 연장돼야 그러나 예외가 있다. 은유 작가의 책 제목 ‘있지만 없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방정환 선생이 부탁한 어린이에 속하지 못하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모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불법’이 되었다.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익숙하고 무엇보다 한국을 ‘우리나라’로 생각하는 이 아이들은 체류 자격이 없기에 독립된 주체로서, 인격적인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등록 번호가 없어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고 본인 명의의 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없다. 2010년 법무부의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에 따라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속이나 강제퇴거가 유예되었지만 여행자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수학여행을 갈 수도 없고 각종 경시대회나 자격증 시험을 볼 수도 없다. 건강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 제대로 치료받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강제퇴거가 유예되었다지만 여전히 소속이 없는 존재로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다행히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력, 그리고 국제 사회의 권고에 따라 2021년 법무부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의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안을 발표하였고, 2022년에는 그 대책의 문제점을 일부 보완하여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을 추가로 발표 시행하였다. 여전히 미흡하지만 이 구제 대책 시행으로 체류 자격을 얻게 된 아이들은 그동안 누릴 수 없었던 것들을 보장받으며 무엇보다 미래를 꿈꿔볼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땅의 아이들인 그들을 위한 제한적인 정책마저 오는 3월 말이면 만료될 예정이다.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구제신청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불법 체류 신세인 부모가 막대한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구제신청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책의 허점 때문에 신청에서 멀어진 그 수를 알 수 없는 학교 밖의 아이들은 계속해서 미등록의 삶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사회 일부의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차가운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불법은 불법 아니냐고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구제해주면 아이들을 이용한 불법 이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주권국가로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법은 없다. 우리 헌법도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이미 1991년에 유엔(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다. 이 협약은 아동 또는 그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불법’ 아동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한 심사 기준에 따라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나는 방정환 선생님이 꿈꿨던 ‘어린이’ 세상은 한국에 사는 모든 아이가 주체로서, 인격적인 사람으로 존중을 받고 사는 세상이고, 거기에는 미등록 이주 아동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의 어떤 어린이도 차별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강제퇴거명령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니며 우리의 미래의 주역으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완전히 펼치는 가운데 성장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보다 진전된 구제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오는 3월 말로 시한이 종료되는 구제대책의 기간 연장과 함께, 현행 대책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교 밖 이주 아동에 대한 대책까지 마련되기를 바란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2025-02-16

[중국읽기] 그들이 ‘너자2’에 열광하는 이유

열풍이다.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哪吒)2’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설 명절 때 개봉된 후 무려 2억 명 넘는 관객이 영화를 봤다. 비(非)할리우드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박스오피스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인터넷에는 ‘너자’ 캐릭터가 넘쳐난다. 관영 매체는 ‘중국 소프트 파워의 승리’라고 환호한다. 주인공 너자는 악동이다. 악신(惡神)으로 태어났기에 천상계(신들의 세계)에서 배척을 받았다. 부모의 사랑이 그를 바꿨다. 정의와 선(善)의 길을 선택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을 가진 천상의 신들은 ‘그냥 정해진 운명을 살라’고 강요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영화는 너자가 부조리한 권력 구조를 혁파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탄탄한 스토리, 화려한 영상, 코믹 캐릭터…. 재밌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절대 권위에 도전하는 스토리를 공산당이 허용했다고?’ 중국 당국은 젊은이들의 체제 반발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런데도 당은 너자2 상영을 막지 않았고, 오히려 흥행을 즐기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방향을 틀었다. 영화 속 ‘절대 권력’이 가리키는 곳은 중국 공산당이 아닌 미국 백악관이다. 천상의 질서는 달러 패권으로 은유 된다. 천상계의 중심인 옥허궁(玉虛宮)은 펜타곤 건물을 연상케 한다. 달러(弗) 표시도 슬쩍 비친다. 이에 맞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너자는 ‘착한 우리 편’ 중국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이 거세질수록 천상의 패권 질서에 반발하는 너자는 더 큰 박수를 받는다. 저항의 에너지가 외부로 향하니, 당국으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다. ‘반미(反美) 코드’는 전통문화와 결합하면서 흥행을 키운다. 주인공 너자는 명(明)나라 시대 고전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따왔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Z세대 청년들의 애국주의 정서에 딱 어울리는 캐릭터다. 애국주의, 전통 우월주의 등은 중국 영화의 흥행 공식이 된 지 오래다. 작년 히트한 애니메이션 영화 ‘장안삼만리(長安三萬里)’, 인기 게임 ‘흑신화: 오공(黑神話:悟空)’ 등도 고전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들은 모두 중화 민족의 화려한 부활을 외치는 시진핑(習近平)주석의 ‘중국몽(中國夢)’과 연결된다. 너자2의 흥행은 중국 젊은이들이 시나브로 중국몽 이데올로기에 젖어 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공산당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 가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시진핑 체제는 더 단단해지고 있다. 한우덕(han.woody@joongang.co.kr)

2025-02-16

[김병기 ‘필향만리’] 雖多 亦奚以爲(수다 역해이위)

공자는 시(노래)를 매우 중시했다. 가슴을 적시는 정서 함양이 포용과 소통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정서 함양 교육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시와 노래라고 여겨 공자는 시 외우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공자는 이런 말도 했다. “전해오는 시 300편을 다 외운다 한들 정치를 맡았을 때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나라를 대표하여 외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임무를 전담할 수 없다면 비록 많이 외웠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소통과 응용 역량이 없는 ‘막힌’ 공부의 병폐를 지적한 말이다. ‘서다이옹 고내멸등’(書多以壅 膏乃滅燈, 壅: 막힐 옹, 膏: 기름 고, 滅: 꺼질 멸)이라는 말이 있다. “책은 많이 읽었으되 막혀 있으면 기름이 오히려 불을 끄는 격이다”라는 뜻이다. 지식이 많은들 그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벽창우(碧昌牛)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벽창우는 무섭다. 요즘 일부 유튜버들이 떠드는 거짓 지식의 악랄한 선동에 매몰된 엘리트 벽창우는 더욱 무섭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1등만을 지향하며 지식 쌓기에 급급한 교육을 해온 결과, 지식은 많지만 인성이 삐뚤게 형성된 일부 엘리트층의 횡포로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지식이 많은들 무슨 소용! 시와 음악을 통한 인성 함양 교육이 시급한 시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5-02-16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빛과 풍경이 되어 만난 환기미술관

한국 작품의 국제 경매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작가는 여전히 수화 김환기(1913~1974)다. 서울미대와 홍익미대 교수로, 미술협회 이사장으로 미술계를 주도하다, 파리에서 세계 속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고, 1964년 무모하게 뉴욕에 정착해 후기작들을 완성했다. 중기까지 청자나 십장생 등 전통적 소재를 즐겨 그렸으나 뉴욕 시기에 점화(點畵) 추상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명실상부 세계화단에 등단했다. “미술은 개념이 아니라 하늘, 산, 바위처럼 (스스로)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자연의 본질을 점, 선, 색이라는 응축된 추상으로 그려냈다. 수화 사후에 미망인 김향안(본명 변동림, 1916~2004)은 재단을 설립하고 1992년 환기미술관을 열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를 설계했던 우규승이 뉴욕에서 친분을 인연으로 설계를 맡았다. 캔사스의 너만미술관 등을 설계한 대표적인 재미 건축가다. 주전시장인 본관과 부속전시장인 별관과 달관, 크기와 모양이 다른 세 동의 건물이 북악산 자락 부암동 골짜기의 지형과 어우러져 자연스레 배열했다. 화강석판과 고압벽돌의 거친 질감과 흰색이 계곡의 바위들과 조화를 이룬다. 3층 본관의 여러 전시실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옥상 정원으로 빠져나와 외벽계단을 통해 다시 별관으로 연결된다. 건물과 정원, 내부와 외부가 둥근 고리같이 순환하는 건축적 산책로를 이룬다. 전시장의 큰 창으로 인왕산의 바위와 한양성곽이 펼쳐져, 작품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 하이라이트는 본관 중앙홀이다. 정방형 타워 형상의 홀 사면으로 연속된 계단들이 위층의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전시장들은 홀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실내 풍경이 된다. 천창에서 내려오는 간접 자연광과 함께 공간 자체가 추상적 작품으로 다가온다. 1970년 수화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전면점화로 모국에 질문을 던졌다. 우규승의 공간은 빛과 풍경이 되어 작가를 다시 만나게 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2025-02-16

[신민영의 마켓 나우] 트럼프 관세, 별것 아니라 보면 큰코다친다

연일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쏟아진다. 대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이 주목할 포인트는 무엇일까. 먼저, 각국의 대미 관세율을 미국도 부과한다는 상호관세는 큰 영향이 없다는 평가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교역품목의 98%가 이미 무관세다. 반도체·자동차·의약품·철강 등에 대한 25% 관세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과 미국 내 생산 비중 등에 따라 업종별로 영향이 다를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3~4년간 20% 이상 올라 이미 한국 기업들이 이득을 보고 있는 데다 반도체 등 한국기업들이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가 많다. 바이든 행정부 때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한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까지 고려하면 25% 관세의 적용 대상이 많지 않고, 제3국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최근 주식시장 호조는 우려보다 충격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반영된 듯하다. 체감 충격이 당장 크지 않아도 향후 문제 소지가 충분하다. 특히 미국은 상호관세율 산정에 비관세장벽을 반영할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8위 대미흑자국인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엮어 대중교역·무역관행·기업정책·외환정책 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합의가 쉽지 않은 비관세장벽과 결부시켜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 기업의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투자 등 사업 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미수출을 위해 멕시코나 중국에 투자를 모색했던 가상의 기업은 지난해 60% 대중관세 방침에 따라 멕시코로 기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업은 올해 들어 ‘대멕시코 관세 25%, 대중 관세 10%’ 소식에 중국으로 방향을 돌리려다 ‘대중관세 10%, 대멕시코 관세 유예’ 방침에 결국 결정장애에 직면했을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다리오 칼다라 국제금융국 차장은 최근 3개월간 관세와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신문기사 비중이 1960년대 이후 대부분의 기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트럼프 1기 때보다도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파행이 가장 큰 우려다. ‘우려보다 덜하다’는 일반적 평가가 있지만, 트럼프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은 작다.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하고 패권 다툼에서 우위 확보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관세를 활용할 가능성은 임기 내내 세계 경제의 리스크로 도사릴 것이다. 관세에 대한 트럼프의 신념은 뿌리 깊다. 1988년 대통령 예비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그는 대일무역적자 축소를 위한 15~20% 관세를 주장했다. 한국의 1, 2위 경제 파트너인 미·중 두 나라의 벼랑 끝 싸움이 특히나 한국경제를 크게 괴롭힐 것은 자명하다. 신민영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초빙교수

2025-02-16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신화의 해석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영웅인 오디세우스 못지않은 또다른 서사시 영웅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아폴로니우스가 쓴 『아르고호의 원정』의 주인공 이아손이다. 삼촌 펠레우스가 빼앗은 왕권을 되돌려 주겠다며 황금 양털을 찾아오라고 하자 이아손은 오디세우스가 10년간 방황한 지중해 전역을 거쳐 흑해 지역에 다다른다. 흑해 동쪽 끝 콜키스(오늘날 조지아)에 이르기까지 이아손의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바다 귀물 스킬라, 노랫소리에 미쳐버리는 사이렌은 물론 하피들과 맞서 싸우고, 충돌 암초인 심플레가데스를 통과해야 했다. 콜키스에 도착한 후에는 아이에테스 왕이 내건 시련에 직면한다. 불을 뿜는 황소를 길들이고, 용의 이빨이 변해 생겨난 해골 전사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결국 황금 양털을 지키는 용과 맞서 싸운다. 이때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는 이아손에 매혹돼 아버지를 배신하고 마법의 힘으로 이아손을 도와 잠들지 않는 용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 오디세우스의 선원을 몽땅 돼지로 만든 키르키의 조카답게 주술에 능한 메데이아는 이아손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하게 된다. 『아르고호의 원정』 이야기와 달리, 황금 양털을 지키는 용이 이아손을 통째로 삼켜버렸다가 아테나 여신의 명으로 토해내어 살아나는 장면을 그린 그리스 도기화가 남아 있다.(사진 위) 이 엉뚱한 상상이 『구약 성경』에 영감을 주었는데, 고래 뱃속에 3일 동안 갇혀 있다 빠져나온 요나의 이야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사진 아래) 『오디세이아』와 『아르고호의 원정』은 식민지를 개척하던 고대 그리스인의 항해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에 대한 경이로움을 반영했다. 그런 신화적 환상은 1~2세기 기독교 형성 과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한국 기독교의 요즘 행태를 보면 신화적인 독단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25-02-16

[시선2035] 힘내라! 대한민국

상가 1층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임대 문의’ 현수막은 경제기사의 단골 요소다. 가게는 텅 비어 어둡고, 간판은 떼어내 자국만 남았으며, 거리는 휑한 풍경. 이런 모습이 담긴 보도사진은 경기가 어렵다는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최근 조금 다른 현수막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힘내라! 대한민국’ 현수막이다. 보통 임대 문의에는 다른 글자라고 해 봐야 부동산 이름 정도가 들어가 있는데, 이 현수막에는 왜인지 ‘힘내라’는 말도 적혀 있다. 누군가 폐업하고 떠난 곳에 ‘힘내라 대한민국’이란 문구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든다. 정말 힘을 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은 자영업자일까, 아니면 저성장 속에서 방향을 잃은 대한민국일까.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려질 때가 많지만, 경기 부진의 파장은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가장 먼저 불어닥쳐 있다.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18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은행 추정). 특히 상대적으로 소득과 신용이 낮은 자영업 대출자가 증가하고 있다. 한은은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신규 대출 공급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대출자의 전반적인 소득과 신용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폐업자 수는 2023년 98만6000명, 지난해엔 100만 명을 넘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최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민 대출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대출자가 원금을 갚지 못해서 서민금융진흥원 등이 대신 갚아준 비율)도 25.5%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지난해 11월 말 기준). 제도권 금융사에서는 대출을 못 받는 저소득·저신용자가 최대 100만원을 빌릴 수 있는 소액생계비대출의 연체율도 무려 30%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민국은 무엇에 ‘힘을 내야’ 할까. 1970년대에는 산업화, 80년대는 민주화, 90년대엔 세계화에 국가적 공력을 들였다. 고도성장도 이뤘다. 올해 1%대의 낮은 경제성장이 예상되자 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눈앞에 다가온 2025년 당장 급한 것은 ‘오늘을 버틸 힘’을 나눠주는 일이다. 자영업자가 무너진다는 것은 국내 취업자 다섯 중 하나의 생계가 위태로워진다는 의미이자, 골목상권과 지역경제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자영업 지원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한참인데 정치권은 여전히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 어쩌면 ‘힘내라’는 막연한 위로의 문구일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팍팍한 삶이 이어지는 지금 이렇게 필요한 말이 또 있을까. “힘내라, 대한민국.” 임성빈(im.soungbin@joongang.co.kr)

2025-02-1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태양의 끝자락

밤하늘에 빼곡히 빛나는 별 사이로 은하수가 흐르는 것이 보인다. 하늘에 꽉 차 있는 별은 전부 우리 은하에 속한 별이다. 우리 은하의 이름은 은하수인데 태양과 같은 별 약 2~4천억 개가 모여있다고 추측한다. 은하수와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는 안드로메다은하로 은하수의 약 2배 정도 크기다. 만약 안드로메다은하에 사는 친구가 그곳에서 은하수를 보면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은하수는 마치 작은 별 하나처럼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밤하늘에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안드로메다은하의 모습이 그 증거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은하 중 하나다. 더 멀리 떨어진 은하는 망원경으로 봐야 흡사 하나의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하수 은하에 산재한 수 많은 별 중 하나가 우리의 별인 태양이고 각각의 별은 그들만의 행성을 갖기도 하는데 태양이란 별에는 여덟 개의 행성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인 해왕성은 중심성으로부터의 거리가 자그마치 45억km나 되는데 지구를 출발한 보이저 2호는 12년 걸려서 해왕성을 지났다. 한 달 늦게 떠난 형제 우주선 보이저 1호는 지금까지 47년 동안 날아서 태양에서 244억km 되는 곳을 비행하고 있는데 이는 빛이 22시간 걸리는 먼 곳이다. 현재 보이저 1호가 날고 있는 곳을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이란 뜻에서 성간(星間)이라고 한다.     지금은 왜소행성으로 격하된 명왕성의 궤도부터 카이퍼벨트라고 부르는데 명왕성 같은 왜소행성뿐만 아니라 얼어붙은 암석 덩어리도 수없이 많이 떠다니는 곳으로 태양 빛조차 6시간 걸려야 도착한다. 대체로 얼음 덩어리나 운석이 주를 이루는데 태양계가 형성될 때 행성이 되지 못한 것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얼음 조각 하나가 태양의 중력에 끌려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온 것을 혜성이라고 하는데 지구에서 관찰할 때 긴 꼬리를 갖는 모습으로 보이는 천체다.     그 바깥은 오르트구름이라고 하며 태양 빛이 1년 정도 가는 먼 곳까지다. 대체로 얼음으로 된 작은 천체로 이루어졌으며 어쩌다 그중 하나가 태양에 끌려 안쪽으로 들어온 천체를 역시 혜성이라고 한다. 비교적 가까운 카이퍼벨트에서 떨어져 나온 천체를 단주기 혜성이라고 하고, 먼 오르트구름에서 시작한 것은 장주기 혜성이라고 구분한다. 75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핼리 혜성은 단주기 혜성이다. 그러므로 혜성은 태양의 끝자락에 있는 카이퍼벨트나 오르트구름에서 기원한 천체다. 이렇듯 태양은 대체로 1광년 정도까지 자신의 영향을 미친다.   태양계의 끝은 너무 멀어서 아직 정밀한 관측이 쉽지 않다. 왜소행성인 명왕성 궤도부터 카이퍼벨트가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2006년 미국의 뉴허라이즌스호가 명왕성 탐사를 떠난 지 반년 후에 명왕성은 행성 지위를 잃었다. 그 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지구를 떠난 지 10년이 채 못 되어 명왕성 근접 비행에 성공했고 2030년경에야 카이퍼벨트를 지나 오르트구름에 이를 예정이다.   은하수에는 태양 같은 별이 수천억 개나 있다고 하는데 각각의 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태양계처럼 어마어마한 세상이 그 속에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런 은하 집단이 조 단위 이상 모여서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우주가 된다니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태양계 안쪽 우리 태양계 은하수 은하

2025-02-14

[사설] 의정 갈등 1년, 내년 의대 정원 논의 서둘러야

━ 신입생·재학생 또 휴학 우려, 정부 구체안 제시 필요 ━ 환자 고통 외면 말고 의사 단체 전향적 자세 보이길 지난해 2월 19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렇게 시작된 의정 갈등이 1년을 끌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한 것엔 일단 정부 책임이 크다. 의대 증원을 위해 철저한 준비와 설득이 필요한데, 일방통행식 결정을 하고 수습도 제대로 못했다. 대형병원을 지탱하던 전공의가 집단 사직하고 의대생이 집단 휴학을 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전공의 이탈로 대형병원은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지난 10일부터 초응급환자를 제외한 심혈관계 응급 환자 진료를 중단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10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암 환자 진료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 늘었지만, 암 수술 건수는 오히려 8.8% 감소했다. 의료 공백이 지속하면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 더구나 비상 진료 체계를 유지하고 수입이 감소한 병원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예비비와 건강보험재정 등에서 쓴 돈이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3개 의대에 대해 ‘불인증 유예(보완 후 재평가)’를 통보한 것에서 보듯 충실한 교육을 할 준비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을 정할 시기가 다가왔다. 이번 학년도 정원은 기존 3058명에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이다. 하지만 신입생이 제대로 수업을 받을지와 지난해 휴학한 의대생의 복학 여부도 불확실하다. 교육부는 지난 4일 수도권의 한 의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휴학을 강요한 사례가 접수돼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휴학 불허 규정이 있는 경우 수업 거부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25학번 신입생은 증원 사실을 알고 입학했기 때문에 휴학할 명분이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이달 안에 전체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3월 말 각 대학이 교육부에 확정된 정원을 제출하고, 4월 입시요강 확정과 5월 공표가 이뤄진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증원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에선 정부의 정리된 입장은 무엇이며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와중이지만 정부가 좀 더 진전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내년 대규모 증원은 쉽지 않다. 의료계 일부에선 증원 인원(1509명)을 당장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비 고3 학생 등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이다. 의사 단체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에 국민은 결코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응급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수술이 밀리는 환자와 가족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자존심 대결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어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성격과 구성 방식을 놓고 이견이 있지만, 이 기구를 통해 의대 정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는 1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와 만난다. 지속적인 대화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우리가 의정 갈등으로 1년을 허비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이 불었고 중국 국내파 연구진이 선보인 딥시크가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의대가 최상위권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함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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